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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간찰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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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간찰

 

 

 

다산 정약용이 1819년 보낸 간찰

 

 

* 정약용

* 크기(간찰+봉투: 72x35.5cm, 액자: 104x56.5cm)

* 상태 좋음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조선 후기의 문신. 실학자. 어려서 자는 귀농(歸農), 그 후에는 미용(美庸). 호는 삼미자(三眉子), 사암(俟菴), 탁옹(籜翁), 태수(苔叟), 자하도인(紫霞道人), 철마산인(鐵馬山人), 다산(茶山). 당호는 여유(與猶). 본관은 나주(羅州, 押海).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초부면(草阜面) 마재(馬峴)(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아버지 정재원(荷石 丁載遠)과 어머니 해남 윤씨(海南 尹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8대 연속 홍문관(옥당) 학사를 배출한 집안으로 고려 말에 배천(白川)에서 살다가 조선왕조를 세울 무렵부터 서울에서 살았다.

 

맨 처음 벼슬을 한 선조는 승문원(承文院) 교리를 지낸 12대조 자급(子伋)으로 이때부터 쭉 이어져 홍문관 부제학을 지낸 수강(壽崗), 병조 판서 옥형(玉亨), 의정부 좌찬성 응두(應斗), 사헌부 대사헌 윤복(胤福), 강원도 관찰사 호선(好善), 홍문관 교리 언벽(彦璧), 병조 참의를 지낸 시윤(時潤)은 모두 옥당(玉堂)에 들어갔다.

 

5대조 정시윤은 만년에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근처인 ‘마재’에 터를 잡아 은거했다. 정약용의 고조부, 증조부, 조부의 3대는 벼슬에 나가지 못했다. 고조의 이름은 도태(道泰), 증조의 이름은 항신(恒愼), 조부의 이름은 지해(志諧), 오직 증조만이 진사였다.

 

아버지 정재원은 대과에 급제하지 않았지만 영조 임금의 특별한 지시(음사; 蔭仕)로 벼슬에 나갔다. 연천현감, 화순현감, 예천군수 등 고을 수령을 지냈고, 조정에 들어와 호조좌랑과 한성서윤을 지내고, 다시 수령으로 나가 울산부사를 거쳐 진주목사(晉州牧使)까지 지냈다.

 

어머니는 숙인(淑人) 해남 윤씨(海南 尹氏)로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의 후손으로,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의 손녀다. 윤선도의 증손자인 윤두서는 한국 회화사에 유명한 자화상을 남긴 화가로 유명하다.

 

아버지 정재원은 세 부인 사이에 모두 5남 5녀의 10남매가 있었다. 첫 부인은 24세로 요절한 의령 남씨(宜寧南氏, 1729-1752)이다. 소생으로 큰아들 약현(若鉉)이 있다. 둘째 부인 해남 윤씨(海南尹氏, 1728-1770)와 사이에 약전(若銓), 약종(若鍾), 약용(若鏞) 3형제와 딸을 두었다. 이 딸이 나중에 이승훈에게 시집간다.

 

다산 정약용의 나이 9세 때(1770년) 어머니 해남 윤씨가 세상을 뜨고 말았다. 12살 때(1773년) 서울에서 20세의 서모(庶母) 김씨(1754-1813)를 데려왔다. 서모 김씨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김의택(金宜澤)의 딸로서 슬하에 3녀 1남(약횡)을 두었다. 큰딸은 채제공의 서자인 채홍근(蔡弘謹)에게, 다음은 나주목사를 지낸 이인섭의 서자 이중식(李重植)에게 시집갔다.

 

 

다산의 집안은 혼맥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익 계열의 학통을 계승하고, 서학(천주학)에 관련을 맺게 된다.

 

다산의 누이는 조선 최초의 영세교인인 만천 이승훈(蔓川 李承薰, 1756-1801)에게 시집갔고, 다산 자신은 이승훈의 누이를 며느리로 맞아들였다. 당시 명망이 높던 이가환(李家煥)은 이승훈의 외삼촌이며 이익(星湖 李瀷)의 종손이다.

 

광암 이벽(李檗)은 다산의 맏형인 정약현의 처남이다. 다산은 그를 통해 처음 서학(천주학)을 접하게 된다.

 

또 백서(帛書)사건으로 유명한 황사영(1775-1801)은 다산의 조카사위이다. 16세 때 진사시에 장원급제한 수재인 황사영이 정약용의 맏형인 약현의 딸 명련(命蓮)에게 장가들었다.

 

다산의 작은 형 정약종은 형제보다 뒤늦게 천주교를 접했지만 그 믿음이 독실하여 신유사옥 때(1801) 희생되었다. 전도에 힘쓰다가 책롱사건으로 마흔 둘의 젊은 나이에 순교했다. 형 약전과 막내(다산)가 믿음을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형제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했다. 엄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배교하지 않은 약종의 아들 철상(哲祥), 하상(夏祥), 딸 정혜(貞惠) 역시 천주교로 인해 요절했다.

 

이가환과 이승훈도 이때 죽음을 당하고, 다산은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다 경상도 장기로 유배당했다.

 

뒤이은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황사영은 능지처참을 당했다. 이로 인해 경상도 장기에 유배되어 있던 다산은 다시 서울로 압송되어 취조를 받았다. 관련사실이 드러나지 않아 극형은 면했으나 형 약전은 흑산도로, 다산은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형 약전은 학문적으로 뛰어난 사람이다. 다산과 한배에서 태어난 형제의 연(緣)뿐만 아니라 다산의 학문을 알아주는 지기(知己)이기도 했다. 1801년 11월 하순 함께 귀양길에 올라 나주 율정점(栗亭店)에서 눈물로 헤어진 후 16년 동안 서로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약전은 그의 나이 59세인 1816년에 유배지에서 세상을 떴다.

 

*****

 

 

다산은 15세 때 풍천홍씨(豊川洪氏)를 취하여 6남 3녀를 두었으나 4남 2녀는 요절하고 학연(學淵), 학유(學遊)와 사위 윤창모(尹昌謨)가 있다.

 

그는 16세 때 이미 서울에서 이가환(李家煥) 이승훈(李承薰) 등으로부터 이익(李瀷)의 학문을 접하였다.

22세 때 경의진사(經義進士)가 되어 줄곧 정조의 총애를 받았고 암행어사, 참의, 좌우부승지 등을 거쳤다.

23세 때에는 이벽(李檗)을 통하여 서양서적을 얻어 읽기도 하였다.

 

1791년 진산(珍山)의 윤지충(尹持忠) 권상연(權尙然)의 옥 이후 천주교로 인하여 세상이 소란하던 중 1795년 중국 주문모(周文謨)신부의 변복잠입사건이 터지자, 정조는 수세에 몰린 다산을 일시 피신시키기 위하여 병조참의에서 금정찰방으로 강등 좌천시켰다.

 

1797년 정조는 다시 그를 황해도 곡산부사로 내보내 1799년까지 약 2년간 봉직하게 하였다.

 

1800년 6월에 정조의 죽음과 때를 같이 하여 야기된 신유사옥에 연좌되어 1801년 2월 27일 출옥과 동시에 경상북도 포항 장기(長鬐)로 유배되었다. 그해 11월에 전라남도 강진으로 이배되어 1818년까지 유배생활을 하였다.

 

*****

 

 

[原文]

己卯八月之書。前月始來。歲適一周矣。所寄餠 茶葉 棐肉 蓮子並領 情貺矣。但聞兩齋有一空之慮。極用慨歎。秋氣己淸。

比來重侍 平安無他憂故耶。從兄弟中。今番科行。或有能勳者耶。恐未易也。吾大抵無病。而飯來則飯。衣到則衣。手中無復一文錢。以是之故。事多庨缺。

誠可歎耳。今春果有好道理故。此事後事。並含黙以過矣。荏苒如此。無以期必以穉女事。作一心恙。未知作何結局耶。吾年此高。不可强人之守紅。未知 僉議如何。 於主客之間。豈有如是孟浪若付之相忘者耶。一則拘也。二則待也。三則無便也。恕此本情。且觀畢竟而己。絮雜並除之。不具。

庚辰 八月三日。戚記無名。頓

 

[추신]

此書將付之於聖來回便。卽又承七月卄六日 書。審慰多少。方對拜延。又企元禮多少並略之。弟狀。姑如昨耳。穉女項癰。無何快示。似己平矣。姑不宣。都留元禮歸時。不來則拜延歸時耳。

八月九日 戚記頓

 

[봉투]

茶山 廬次 敬奉 斗陵候疏.

 

 

 

 

[번역]

기묘(己卯, 1819년) 8월의 편지가 지난달에야 도착했으니 딱 1년이 지났습니다.

보내주신 다병(茶餠), 다엽(茶葉), 비육(肥肉), 연자(蓮子)는 모두 그대의 마음으로 알고 잘 받았습니다. 다만 두 재사(齋舍)가 한꺼번에 빌 우려가 있다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가을 기운이 벌써 청명한데 근래 조부모님, 부모님 모시고 다른 우환 없이 잘 지내십니까?

종형제(從兄弟) 중에는 이번 과거 보러 오는 길에 혹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쉽지 않겠지요.

저는 병 없이 밥이 오면 밥을 먹고 옷이 오면 옷을 입습니다만, 수중에 돈 한 푼이 없어 이 때문에 빠뜨리는 일이 많으니 참 안타깝습니다.

이번 봄에는 과연 좋은 방도가 있을 것이므로 이 일 저 일 모두 묵묵히 지나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머뭇머뭇 시간만 흐르다 보니 꼭 이루어진다는 기약은 없지만 어린 딸의 일로 마음에 병이 하나 생겼는데 어떤 결말이 날지 모르겠습니다.

내 나이가 이처럼 많으니 남에게 정절을 지키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주인과 손님의 사이라 해도 어찌 이처럼 맹랑하게 서로 잊은 것처럼 할 수 있답니까? 첫째는 거리끼는 것이오, 둘째는 기다리는 것이오, 셋째는 인편이 없어서이겠지요. 그 본마음을 이해하고 결과를 지켜볼 뿐입니다.

번잡한 것은 모두 줄입니다. 갖추지 못합니다.

1820년 8월 3일 척기(戚記) 무명(無名) 돈(頓).

 

이 편지를 성래(成來)가 돌아가는 편에 부치려고 했는데, 곧바로 7월 26일의 편지를 또 받으니 좀 위안이 되었습니다. 이제 막 배연(拜延)을 대하고 또 원례(元禮)를 기다리고 있으니 저간의 상황은 줄입니다. 저는 여전합니다. 어린 딸의 목에 생긴 종기에 대해서는 말씀이 없으신 걸 보니 이미 나은 듯하군요. 이만 줄입니다.

8월 9일에 척기(戚記) 돈(頓).

 

모두 원례(元禮)가 돌아갈 때 편지에 쓰기로 하고, 그가 오지 않으면 배연(拜延)이 돌아갈 때 쓰겠습니다.

 

 

[주석]

원례(元禮) : 한백원(韓百源)의 자이다. 본관은 청주, 한준겸(韓浚謙)의 봉사손이다. 부친은 한진하(韓鎭夏), 조부는 한치억(韓致億), 외조는 유한우(兪漢遇), 처부는 이일운(李日運)이다. 죽란시사의 일원이었다.

 

  

*********

   

 

 

본 간찰은 두 장의 내용을 한 장으로 붙였다.

 

8월 3일 편지를 써놓고 인편을 기다리는 중, 8월 9일 다시 추신을 별지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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